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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세상사 이모저모

‘눈 먼 돈’ 특별교부세 7000억 고위공직자·의원이 나눠 쓰는...

by 나비현상 2007.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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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교부세 제도가 행정과 정치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는 데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특별교부세로 지역에 가서 큰소리치거나 행정자치부 장관이 자의적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은 없어져야 한다.” 2003년 행정자치부 업무보고 때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교부세에 직격탄을 날렸다. 노 대통령은 “특별교부세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근본적 개선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특별교부세는 지금도 건재하다. 매년 1조원 이상 책정되던 특별교부세는 줄었지만 아직 7000억원대에 이른다.

특별교부세(특별교부금)는 정부 예산에 포함된 것으로 ‘지방교부세’의 하나다. 예상치 못한 특별한 지역 현안 또는 각종 재해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광역·기초자치단체에 긴급하게 지원하는 돈이다. 주무부서는 행정자치부다. 여기에다 행정자치부는 자체적으로 선정한 우수자치단체에 특별교부세를 나눠준다. 지역의 균형 발전이 그 취지다. 그러나 실제론

‘포크배럴’(pork barrel·돼지고기통) 정치에 특별교부세가 활용되고 있다. 포크배럴 정치는 미국 국회의원들이 연방예산을 끌어들여 지역구에 선심 쓰고 표를 얻는 행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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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세 액수가 국회의원 ‘성적표’

역대 대통령들에게 특별교부세는 통치자금이었다. 대통령이 지역을 돌면서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나오는 다양한 숙원 사업을 해결할 수 있는 복주머니였고, 정치권과의 매개 고리로 특별교부세를 활용했다. 지역 발전을 미끼로 ‘야당 의원 빼내기’를 할 때도 특별교부세는 유용한 도구였다. 당적을 바꾼 의원들이 특별교부세를 두둑이 챙겼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사례는 많이 줄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 평가지만 행자부의 ‘쌈짓돈’처럼 쓰이는 예는 아직도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민선 도지사와 시장이 처음 선출된 1995년 7월 이후 임명된 행정부시장과 부지사는 모두 100여 명. 이 중 행자부 출신이 90명이 넘는다. 행자부 출신이 이 자리를 독식하다시피 한 이유는 지방교부세, 그중에서도 특별교부세를 타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역할이 친정에 대한 로비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용으로 여전히 한몫하고 있다. 해마다 가을 정기국회 때는 국회의원 사무실에 지역 민원이 쇄도한다. 자치단체도 국회의원을 앞세우고, 국회의원들은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치열하게 로비에 나선다. 특별교부세를 한 푼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다.

2005~2006년 연속 특별교부세 배정 상위에 올라 있는 전북 군산시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강봉균 의원의 의정보고서를 살펴보자. ‘강봉균 의원이 추진한 예산과 정책’이라는 제목 아래 ▶월명공원 생태통로 개설(2006년 6월, 5억원 특별교부금 확보) ▶군산 지역 송배전선로 지중화 사업:총 사업예산 80억원(2006년 11월 25억원 특별교부금 확보) ▶금강공원 축구전용구장:내흥동 금강공원 내에 50억원을 들여 축구전용구장 건설 추진(2006년 특별교부금 5억원 확보)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2005년 특별교부금 10억원 확보) 등이 나열돼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는 ‘의정보고서’에 올리는 내용의 십중팔구는 “내가 정부 돈을 따내 마을에 다리를 놨다, 내가 문예회관을 지었다”는 식이다. 강 의원의 사례에서 보듯 자금 출처는 대부분 특별교부세다.

본지 분석 결과 국회 예결위원장을 지낸 강봉균 의원이나 박희태 의원 등 국회나 정부에 영향력이 큰 여야 중진의원들의 지역구가 평균의 두 배 이상씩 특별교부세를 받았다.<그래픽 참조> 행자부를 관할하는 국회 행자위, 기획예산처를 관장하는 국회 운영위 그리고 예결특위 소속 의원의 지역들도 혜택을 누렸다.

특별교부세의 용도는 군 단위 지역이나 서울·광주·울산 등 대도시 지역이나 대부분 건설 공사자금이다. 예컨대 서울 종로구는 지난해 ▶조계사 국제명상센터건립(20억원) ▶북악산 정비(5억원) ▶창성동 도로개설공사(5억원) 등의 명목으로, 도봉구는 ▶문화의거리 조성(10억원) ▶복합복지센터건립(10억원) 등의 명목으로 지원 받았다.

정부, 사용 내역 공개하지 않아

2005년 12월의 정치 쟁점은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였다. 정국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놓고 팽팽히 대립해 꽁꽁 얼어붙어 있는 듯했다. 당시 심상정(민노당) 의원은 브리핑을 자청해 “각 당이 겉으로는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정부와 여야가) 사이 좋게 특별교부세 나눠먹기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행자부는 민주노동당에도 (교부세를) 좀 떼어줄 테니 용처를 내놓으라 주문하고 있는 상태”라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심 의원은 다짐했다. “그동안 특별교부세 사용 내역을 보신 분은 단 한 분도 없을 것이다. 저도 보지 못했다. 자료를 내놓으라 하니 정부에서는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답이 왔다. 민주노동당은 특별교부세 내역 공개를 촉구하고, 전면적으로 실체를 밝혀 나가겠다.”

하지만 이후에도 특별교부세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가 특별교부세 내역 공개를 주저한 까닭이다. 그 사이 수면 아래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흥덕사에 10억원을 편법 지원하는 사고가 터졌다.

지역구 의원이 특별교부세를 따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자기 주머니를 불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특별교부세제 자체에 있다. 한경대 이원희(행정학) 교수는 “특별교부세는 배분 기준이 모호하고, 규모가 크고, 정부가 재량적으로 집행하게 돼 있다는 점에서 원천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예산으로 써도 되는 것을 특별교부세로 나눠주는 것은 아직도 통치자금적 성격이 남아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지역에 다리를 놓고, 마을회관을 짓는 예산을 ‘특별히 주는 돈’으로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그 이유가 뭘까. 현행 제도 아래서 ‘예상치 못한 특별한 지역 현안’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예비비’를 활용하면 된다. 그런데도 특별교부세를 두는 것은 정부가 선심 쓰면서 재량껏 돈을 지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비를 쓰게 되면 나중에 국회의 결산을 받는 과정에서 집행 내역이 밝혀지지만 특별교부세는 내역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 이 교수는 “특별교부금은 그야말로 ‘특별한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며 “특별교부금의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치단체 길들이기’에 이용 소지

정부가 자치단체 길들이기에 특별교부세를 이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행자부는 ‘정부시책에 협조적인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를 구분해 차등해서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정부가 ‘우수 자치단체’를 선정해 특별교부세를 주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2년간 무려 316곳을 우수단체로 지정해 특별교부세를 배분했다.
우수단체로 선정해 나눠준 특별교부세는 2005년의 경우 1678억원이나 됐다. 특별교부세 총액의 23%에 해당한다. 그러다가 지난해 534억9000만원(특별교부세 총액의 7%)으로 줄어들었다. 전국 공무원 노조 이지문 전 정책연구원은 “결국 나눠먹기의 전형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별교부세가 ‘정부 시상금’으로 둔갑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중앙SUNDAY
강민석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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