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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미용패션 및

스킨십

by 나비현상 2008.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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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완벽한 사내로 인정받던 한 중년의 몰락이 화제였다. 배 나오고 머리카락 듬성듬성한, 평범한 중년 사내들은 모였다 하면 23세 연하 여성의 욕심 때문에 망가진 그의 인생에 대해 침을 튀기며 말한다. 내용은 늘 똑같다. 안타까움 반, 부러움 반이다. “거참”을 연발하던 이야기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끝난다. “23세 어린 상큼한 여성이 들이대면 당신들은 버틸 자신 있어?” “아무도 들이대지 않아서 문제지, 버티기는 왜 버텨. 지나가며 눈길만 줘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

참으로 허탈한 중년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뭐가 아쉽고 부족한 것일까? 젊은 애인을 둘 능력도, 아무런 매력도 없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새로운 향락산업이 최근 호황이다. 안마시술소에서부터 스포츠마사지까지 다양한 형태의 마사지 업소다. 시내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면 어김없이 차 앞유리엔 마사지 광고가 붙어 있다. 언제부턴가는 ‘여대생 마사지’ 광고가 눈에 띈다. 여대생이 마사지를 하면 많이 다른 모양이다.

동물실험에서도 피부 자극받은 쥐들이 오래 생존

이런 현상을 단지 변태 매춘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안이하다. 이 현상의 배후에는 좀더 근본적인 문화심리학적 문제가 숨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마사지’가 우울한 중년을 위로해주는 것일까? 남성들의 경우만이 아니다. 여성들을 위한 고급 스파 같은 마사지숍도 요즘 호황이라고 한다.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것도 이제 단순히 때를 밀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다양한 마사지 기술에 몸을 맡기고, 마지막은 향이 나는 오일마사지로 끝낸다.

이 모든 것은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져지지 않기 때문이다. 애무, 즉 스킨십이 부족하단 얘기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에게 가장 결핍되는 것이 바로 애무다. 중년 부부에게 애무는 오래전 전설 같다. 노인 부부가 함께 살다 아내가 먼저 죽으면 남편은 대부분 18개월 안에 따라 죽는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이 먼저 죽으면 아내는 4년 정도 지난 후 죽는다고 한다. 여자는 남편이 죽어도 잘 견디지만, 남자는 아내가 죽으면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스킨십을 통한 정서적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스킨십 대상이 있다. 손자나 자식들과의 스킨십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남자는 아내 외에 대상이 없다. 그래서 아내가 먼저 죽으면 스킨십을 나누며 정서를 공유할 대상이 없게 된다. 정서를 공유하지 못하는 삶은 더는 인간의 삶이 아니다.

애무에 대한 욕구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다. 온갖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장치로 치장하고 있지만,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삶은 허탈하다. 피부는 발생학적으로 뇌 조직과 뿌리가 같다. 같은 세포에서 하나는 뇌로, 하나는 피부로 갈라져 발달하는 것이다. 뇌를 끊임없이 자극해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피부도 끊임없이 자극받아야 하는 것이다.

갓 태어난 새끼쥐들을 어미쥐에게서 분리해 두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에는 먹이만 풍족하게 주고, 다른 한 집단에는 먹이와 더불어 피부를 자극해줬다. 마치 어미쥐가 입으로 핥아주는 것처럼 젖은 붓으로 새끼쥐들의 피부를 자극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먹이만 받아먹은 새끼쥐들은 대부분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그러나 피부 자극을 받은 쥐들은 어미쥐 밑에서 자란 쥐들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단지 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생물은 피부에 끊임없는 자극을 원한다. 인간은 이 피부를 통한 애무를 정서적 의사소통 관계로 발전시켰다.

아기는 엄마 품에서 스킨십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아기를 만져주는 손의 움직임을 통해 엄마의 기쁨은 아기에게 전달된다. 특히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 중 하나인 간지럼 태우기는 아기의 의사소통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아기가 간지럼을 느낀다는 것은 세상에 또 다른 존재가 있음을 알고 그와 상호작용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를 간지럼 태우면 전혀 간지럽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간지럼을 태우면 쉽게 반응하게 된다. 따라서 간지럼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인지적 능력이 있음을 뜻한다.

점차 금기시되는 스킨십 … 마사지 산업이 틈새 파고들어

뿐만 아니다. 애무를 나눌 대상이 없으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만진다. 자기 몸을 만지는 셀프터치는 곤경에 처했을 때 많이 나타난다. 고민이 있거나 곤란한 상황에서 우리는 자기 빰을 만지거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주 괴로우면 머리털을 쥐어뜯기도 한다. 어미원숭이와 떨어져 혼자 자란 원숭이의 특징 중 하나가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는 행동이라고 한다. 아무도 만져주지 않는 몸을 스스로 애무하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 욕구인 스킨십이 이제는 사회적 금기가 돼가고 있다. 젊은 연인들의 과감한 스킨십은 사회적으로 관용되지만, 결혼과 동시에 부부의 스킨십은 남의 일이 되고 만다. 애무의 욕구는 살아 있는 동안 지속되지만, 그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이 틈새시장을 놓치지 않은 자본주의적 상혼이 바로 마사지 산업이다.

삶의 욕구는 만지는 만큼 커진다. 한국 사회의 원인 모를 분노와 공격성은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만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다. 이 애무의 회복이 한국 사회의 사회심리학적 불안을 치유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만지는 만큼 커진다. 무엇이든!

김정운 명지대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문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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