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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무기’ 간통죄, 이젠 남편 쪽 고소가 더 많아

by 나비현상 2007.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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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무기’ 간통죄, 이젠 남편 쪽 고소가 더 많아
서울 5개 법원 ‘불륜 재판’ 224건 집중 분석

중앙SUNDAY



“임자 있는 남자 나누어 갖는 여자가 원하는 게 뭘 거 같니? 나누지 않고 혼자 갖고 싶은 거 아니겠니?” 히트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 나오는 대사다. 방송작가 김수현은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뻔뻔한 불륜’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세태 변화를 절묘하게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연 현실은 어떨까. 어떤 과정을 통해 불륜이 이뤄지고, 어떻게 처벌받고 있을까.



40대의 의사 A씨. 그는 결혼 10년 만인 1999년 아이와 아내를 캐나다로 보냈다. 아이의 조기유학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된 것이다. 5년간 사실상의 싱글 생활을 한 그는 ‘기러기 아빠 엄마’ 모임에서 한 여성과 눈이 맞았다. 이후 A씨는 그 여성이 하는 음식점에 돈을 대줬고, 두 사람의 사랑은 동거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귀국한 A씨의 부인에게 꼬리를 잡혀 구속을 당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A씨에게 징역 10개월, 상대 여성에게는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유럽 출신의 외국인 B씨. 30대 후반인 그는 2002년 한국 여성과 결혼을 한 뒤 다른 여성과 불륜에 빠졌다가 부인에게 고소당했다. ‘간통(Adultery)’이란 범죄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그가 먼 이국땅에서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것이다. ‘간통의 글로벌화’라고 할까.

그러나 최근 들어 A씨나 B씨처럼 구속되거나 실형까지 사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 되고 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으로 구속 재판을 받은 간통 피고인은 15명 중 1명꼴(6.9%), 실형을 받은 피고인은 20명 중 1명꼴(5.4%)에 불과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배우자로부터 간통 고소를 당해 혐의가 인정되면 ‘구속에 징역 1년’이 기본이었다. 97년만 해도 재판에 넘겨진 10명 가운데 7명이 구속되고 4명 중 1명 정도는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갈수록 ‘간통 판결’이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서울 시내 5개 법원에서 2005년부터 최근까지 내려진 간통 관련 판결 224건을 정밀 분석했다. 고소당한 배우자의 연령을 따져본 결과 30대와 40대가 80% 이상으로 ‘사회 활동이 왕성할수록 불륜의 위험성이 크다’는 상식을 뒷받침했다. 30대 초반의 한 남성은 결혼 후 9개월 후부터 불륜을 맺다가 부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재판부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십 차례 간통을 한 데다 유부남이 아닌 것처럼 상대방을 속여 고통을 안겨 주었다”며 징역 6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간통죄는 여성의 무기’라는 일반 통념과 달리 남자 배우자 쪽의 고소로 간통죄 재판이 시작된 경우가 116건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보인다. 해외 출장 길에 비즈니스로 만난 연하의 현지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 남편에게 고소당해 재판을 받은 30대 여성 회사원도 있다.

특히 간통죄만으로 재판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18건으로 전체의 8%에 그쳤는데, 이 가운데 12건이 남자 쪽 고소에서 비롯됐다. 그만큼 남자 쪽의 처벌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대검 김진숙(부공보관) 검사는 “실제 간통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남성 배우자 쪽에서 더 끈질기게 감방에 넣어 달라고 요구하곤 한다”며 “남자의 복수욕과 독점욕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중 고소 취소로 공소기각 처리된 101건 가운데 60%인 61건이 여자 배우자의 고소였다는 점과 대조를 이룬다.

친고죄(親告罪)인 간통죄는 배우자가 고소를 거둬야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다. 가게를 운영하던 중 건물주와 바람을 피운 한 30대 여성은 상대방 남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남편과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아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상대 여성의 집에서 불륜 행각을 벌인 30대 남성 두 명은 간통죄와 주거침입죄로 고소당했다. 재판 과정에서 남편이 고소를 취소함으로써 여성은 풀려났지만, 남성은 주거침입죄의 적용을 받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상대 남자를 ‘전과자’로 만들고 말겠다는 남편 의지가 실려 있다.

단순한 불륜에 그치지 않고 다른 범죄로 이어진 사건도 7건에 달했다. 한 50대 남성은 40대 여성과 불륜을 맺은 다음 “1억원을 주지 않으면 남편에게 관계를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간통죄에 공갈·폭행 혐의까지 덧붙여졌다. 징역 1년6개월의 중형을 받았다.

경찰관으로 일하던 50대 남성 역시 고교 동창 친구의 부인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친구가 알게 되자 “합의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재판부는 “한 가정을 사실상 깨뜨려 놓고도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의 신분을 망각한 채 정신적 고통을 겪는 친구를 오히려 수차례에 걸쳐 협박한 것은 너무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8개월의 형을 내렸다.

한 30대 남성은 다른 여성과 딴살림을 하던 중 부인에게 고소당한 뒤 간통죄 부분은 고소가 취소됐으나 상대 여성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간통죄 적용 여부를 떠나 불륜이 아름답게 막을 내리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전체적으로는 △증거가 명백한데도 범행을 부인하거나 △간통 외에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경우 △다른 범죄에 대한 집행유예 기간 중에 간통을 저지른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최근 들어 법원이 간통 피고인에게 사회봉사명령을 내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분석 대상 판결 가운데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것은 모두 9건.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최병률 판사는 지난 6월 간통 피고인들에 대해 징역 6~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각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실형을 내릴 경우 “피고인들이 그간 쌓아온 경력을 모두 잃게 되는 데다 개인의 애정관계에 국가가 깊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개인적 차원에서 반성할 기회를 준 것이다. 서울남부지법도 불륜 남성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집행유예와 함께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법원의 한 판사는 “동료 판사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간통 피고인에게 실형보다는 개인적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닌 이가 많다”며 “아무래도 사회 인식의 변화에 영향 받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권석천 기자·박준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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