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금/세상사 이모저모

한식의 유래-노모와 함께 타죽은 개자추의 참혹한 모습을...

by 나비현상 2008. 4. 5.
SMALL

개자추의 죽음으로 유래된 한식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월6일은 한식날로 예로부터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 고유의 4대명절로 전해오는 날로서 그 유래를 알아 두는것도 좋을 것 같아 정리를 해 봤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진(晋)의 문공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왕자로 여러나라를 떠돌아 다니다가 먹을 것이 없어 온갖 고초를 겪고 있을 때,  그를 모시고 있던  '개자추'가 자기 다리살점을 떼어 국을 끓여 바치자,

 


떠돌이 생활로 오랫동안 고기 맛을 보지 못했던 공자 '중이'는 무슨고기인지도 모르고 고기를 맛있게 먹고, 나중에야 그것이 개자추의 다리살점이란 사실에 놀라고  감격해서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는가 하고 묻자.... 개자추는 신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공자께서 고사리도 못 잡수시니 생각다 못해 신의 다리살을 한점 떼어내서 국 한 그릇을 끓였나이다.  신이 들으니  ‘효자는 몸을 죽여 어버이를 섬긴다고 하고, 충신은 몸을 죽여 임금을 섬긴다`하오니 지금 공자께서 굶주리시는데 다른 식물이 없어 신의 고기라도 진상하온 것이오이다.”

 

 

 

개자추는 신하로서 임금을 위하는 일에  어찌 보답을 바라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공자 '중이'가  진(秦) 목공의 힘을 빌어 나라를 찾을 무렵 '호언'이란 신하가 자기 공적을 장황하게 상기시키자,

 

 개자추는 “ 공자께서 입국해서 나라를 찾음은 천의(天意)이다. 어찌 중신들이 자기 공로로 만들려는가?  이렇듯 부귀를 탐하는 무리와 한 조정에 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고 조정에 나가지 않고 은퇴할 뜻을 말했다.

공자 '중이'가 즉위하여 진(晋)의 문공이 되니... 논공행상이 벌어져서, 그동안 망명지에서 따라 다닌 사람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땅과 벼슬을 주었다. 그리고 공 있고 상을 못탄 사람은 말을 하라고 방(枋)을 붙였다.

 


개자추는  사소한 공을 다투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고, 병을 핑계하여 집에서 청빈을 감수 하고 몸소 짚신을 삼아 노모를 부양했다.

 


진의 문공은 주변에 개자추가 안보이자  그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웃사람이 상이 없음을 보고 '개자추'에게 방이 붙었음을 고하자 개자추는 웃기만 했다. 그것을 본 노모는

“ 너는 19년간 같이 고생하고, 또 다리 살점을 떼어 공양한 일도 있는데.. 어째서 그런 말도 않느냐?  곡식 몇 섬을 얻어 조석시랑이 되면 짚신을 삼지 않아도 좋치 않느냐...”

 

짚신을 삼아 생계를 이어가며 갖은 고생을 다하는 아들의 모습을 딱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어머니에게 개자추는 말하기를...

 


 “ 헌공의 아들 중 '주공'이 가장 어진 사람이오이다. 여러 신하들이 하늘의 뜻을 모르고 공을 다투어 자기네 공로로 나라를 찾은 줄 아나, 저는 그렇듯 비루한 생각을 부끄럽게 여기나이다. 차라리 평생 짚신을 삼을지언정 감히 하늘의 공을 자기의 공으로 탐을 내지는 않겠습니다. 자식이 임금에게 구할 것이 없는데... 무슨일로 찾아뵈올겁니까?”

 


개자추의 어머니는 아들의 청렴한 생각에 감동하며,

“네가 청렴한 선비가 된다면,  나역시  청렴한 선비의 어머니가 못될 것이 없다. 우리 모두 깊은 산속에 숨어 시정의 혼탁한 생활을 피하자.”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의 마음까지 감동시키고,  면산이라는 깊은 산골로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개자추가 산으로 들어간 뒤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해장'이라는 사람은 개자추의 고결함을 사랑하여 그의 일거일동을 잘알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써서 성문에 붙히자,  조정에 들어가던 관원이 그 글을 문공께 바쳤다.

 


문공은 놀라면서

“개자추는 다리살점을 떼어주고 충성을 다했는데, 개자추만이 상이 빠졌구나 내 잘못을 무엇으로 사과할 것인가” 하고 곧 개자추를 찾았다.  그러나 개자추의 행방을 아는 자가 없어 방을 붙여 개자추를 찾는 자는 큰 상을 준다고 했다.

 


'해장'은 자기가 쓴 글임을 고백하고...  개자추는 상을 구하는 것을 수치로 알고 노모를 업고 면상땅 깊은 산골로 갔음을 알렸다.

문공은 태산준령을 넘어 개자추가 갔다는 면산산골을 삼일간이나 수색했으나  찾지 못하자,

 

 

 

“ 개자추는 효도가 극진하니 만약 불을 놓아 산을 태우면, 노모의 안위를 생각하여 반드시 노모를 업고 나올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산에 불을 놓게 했다.

 


그러나...삼일 밤낮을 태웠으나, 개자추는 결국 보이지 않았다.

다시 더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수색하자.....

 


노모와 함께 타죽은 개자추의 참혹한 모습을 발견했다. 문공은 눈물을 흘리면서 장사지내고, 사당을 지어 그의 혼을 위로하고 면산을 개산이라 고쳐 부르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개자추가 죽은 깃점으로 한 달동안 냉일을 정해 금화, 금연토록 했다. 개자추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찬 음식을 먹는 한식날의 유래가 탄생된 것이다.

 


여기서 개자추의 죽음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모두가 나만 잘 먹고, 잘되고,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이웃의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잘된 일은 자기가 잘해서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못한 일은 조상탓이거나 남의 탓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굳이, 자신이 말하지 않더라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신이 알고 있다. 거짓말이, 나.. 너.. 때문이야 하는 풍조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한편으로는 진나라 왕인 문공의 신하를 사랑하는 마음또한 새겨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소홀로 충성스런 신하가 죽은 것을 안타갑게 여기고 스스로 반성하고 신하의 죽음을 후대에 기억되도록 한식날을 만들어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것은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않음을 보여 준것이라 할것이다

 


자기 공을 다툴 줄 모르고 자기희생을 통해 본을 보이는 개자추의 삶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출처 : 다음 신지식 야탑333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