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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세상사 이모저모

현대판 마녀사냥 비극, 호주 오페라의 '린디'

by 나비현상 2008.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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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로 묘사된 현대판 마녀사냥의 비극

 

1980년 8월 18일. 한 어머니의 처절한 외침이 호주 언론의 헤드라인을 통해 울려퍼졌다. “딩고가 우리 아기를 물고 갔어요!” 바로 호주 역사상 가장 큰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던 법적 투쟁의 시작이었다.


한 여인의 처절한 외침이 언론을 강타하기 바로 전날 울루루(Ulruru : 원주민 언어로 에어즈 록의 공식 명칭) 주위의 캠프 사이트에서 챔벌린 부부는 세 자녀와 함께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날 밤 아이들이 자고 있던 텐트에서 울음소리를 듣고 재빨리 달려간 어머니 린디는 9주된 아기 아자리아가 딩고(Dingo : 호주의 야생개) 에게 물려가는 것을 목격하고 아이가 딩고에게 납치되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모호한 실종 흔적으로 인해 법정과 언론은 이 결백한 어머니에게 영아 살해라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 호주 역사상 가장 악랄한 어머니로 만들어 종신형을 선고한다. 그녀의 남편은 종범자로 단기간 수감되었다. 3년 후 1986년, 울루루의 바위에서 떨어져 사망한 관광객의 주위에서 아자리아의 마티네 재킷이 발견되면서 처절한 어머니의 법적 투쟁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아자리아의 마티네 재킷은 린디의 결백을 밝혀주고 마침내 린디는 풀려나게 된다. 그 이후 사회에 대항한 처절한 린디의 법적 투쟁은 1988년 말까지 지속되었고 호주 희대의 법적 투쟁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언론과 법정의 극악무도한 마녀사냥이 이끈 한 어머니의 무모한 희생은 호주의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자 호주인의 자화상으로서 그 파장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린디 챔벌린과 딸 아자리아

 2002년 10월. 법적 투쟁이 결말을 맺은지 14년이 지난 시점에서 린디 챔벌린의 사건이 오페라로 제작되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올려졌다. 이 사건은  여러 예술 분야의 소재로 채택되어 소설, 영화(메릴 스트립 주연의 'Evil angels'), 그림으로 제작된 바 있다. 하지만 오페라로 제작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호주의 여류 현대 작곡가 모야 헨더슨과 여류 시인 주디스 로드리게스는 1991년 공동제작에 착수했고 11년 만에 오페라 오스트레일리아의 연출가 스튜어트 몬더의 연출로 빛을 보게 되었다. 호주의 정서로 호주인에 의해 호주에 올려진, 그야말로 호주적인 오페라였다. 

문학 작품이 아닌 현대의 실제 사건이 오페라로 제작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오페라 소재의 인물이 생존하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게다가 그 인물과 가족에게 과거의 비극을 상기시켜 줄 수 있는 경우라면 어떠한가? 이것이 처음에 작곡가 헨더슨이 가장 염려한 바였다

오페라의 주인공들이 생존하고 있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죠. 그래서 오페라가 가족들에게 안겨다 줄 충격에 대한 염려가 컸어요. 하지만 린디는 제 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린디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린디의 비극을 생생히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 어느 작곡가가 사건이 일어나던 시대 속에 있었던 저보다 오페라를 잘 쓸 수 있을까요?"

오페라 '린디'의 제작자들 그리고 청중들은 재판이 한창이던 암울한 시대를 생생히 체험한 이들이었다. 그 시대에 갓난 아기에 불과했고 호주의 정서가 몸에 깊게 배어있지 않은 필자마저도 오페라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자극을 받았는데 호주의 정서를 가진 그 시대를 살았던 청중들이 느낀 감회는 오죽했을까.



딸의 사진을 들고 호소하는 린디 챔벌린

현대 오페라가 시사한 법의 그늘, 호주의 상처 '린디' 공연되는 기간 동안 오페라 하우스 로비에 호주의 미술가 네빌 도슨의 아크릴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호주의 자연, 주요 인물들의 모습이 애보리지니 바위 예술의 기법과 서양화의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호주의 야생 자연이 주는 공포심이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었다. 각 작품마다 오페라의 리브레티스트 로드리게스가 붙여놓은 시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가슴 찡한 파동을 일으켰다.

오페라는 2막으로 구성되어 인터벌 없이 진행되었다. 울루루의 불가사의하고 광활한 야생과 인간 세계의 대조, 그 두 세계간의 상호작용이 오페라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 두 세계의 대조는 각각 호주 자연의 공포와 서양문명의 도입(법정 체계)을 상징한다. 이 두 상징은 현대 사회 속 린디의 가족과 그 가족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굶주린 딩고, 즉 죄없는 챔벌린 부부를 단죄했던 언론과 사회로 구체화된다. 1막의 첫장면 '딩고'에서 린디(소프라노 조안나 콜)는 옛 여성들이 아기를 낳던 신성한 동굴 속에서 아자리아를 품에 안은 채 딩고에 대한 공포를 노래한다. 곧이어 플래시 백으로 린디가 수감되어 있던 다윈 감옥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언론 패거리를 상징하는 딩고들(딩, 동, 벨)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으로 린디를 향해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다. 아자리아의 마티네 재킷의 발견으로 린디는 풀려나고 장면은 아자리아가 사라지던 날의 밤으로 전환된다. 린디 가족과 관광객들이 저녁의 바베큐를 즐기는 사이에 때까치 소리를 나타내는 플루트의 전주는 비극을 예견하듯이 불안하게 들린다. 곧이어 린디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딩고가 우리 아기를 데려갔어요!"

아자리아의 살인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증거물들이 제시되고 린디는 프릴이 달린 우스꽝스런 옷차림으로 법정에 선다. "린디를 석방해도 그녀의 생활은 X같이 지독해질 것"이란 시뻘겋고 낭자한 글씨가 새겨진 린디와 똑같은 의상을 입은 언론 패거리들이 린디를 조롱하며 막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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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딩고’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악몽으로 점철되었던 1막에 이어 2막은 린디의 결백을 증명하는 법정 취조의 과정을 현실적으로 보여주었다. 법은 결국 정의를 가려내었지만 챔벌린 부부는 자신들의 달라진 인생에 대해 한탄한다. 린디의 남편인 마이클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린디는 희망의 빛 가운데 선다. "나는 이 숨막힐 듯 답답한 어둠을 벗어나 빛을 향해 걸어가네“ 조안나 콜의 호소력 짙은 콜로라투라 목소리가 희망을 부르짖는 가운데 오페라가 막을 내리고 객석에서는 기쁨의 환호가 넘쳐흘렀다. 그 시대를 살았던 중장년층이 대부분인 관객들의 환호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사회의 불의를 향해 끝까지 용감하게 저항했던 한 어머니의 위대한 의지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었을까?

갈채는 린디를 열연한 조안나 콜에게 집중되었다. 콜 특유의 찌르는 듯하고 강인한 콜로라투라 목소리는 언론과 법에 대항하여 홀로 싸우는 처절한 린디의 비극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표현했다. 다른 가수들은 언론 패거리와 법정 인물들과 법의학자, 아자리아와 딩고의 영혼등 다중 배역을 훌륭한 연기력으로 소화해 냈다. 헨더슨의 만화경 같이 변화무쌍한 음악은 린디의 비극과 호주의 자연, 언론 패거리들의 희극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 음악은 표면의 현실을 잘 부각시키긴 했지만 극 속에 깊이 내재된 심리를 표현하는데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로드리게스의 대사는 가끔 지나치게 서사적이라 극적 감동을 반감시키기도 했다. 플래시 백을 적절히 사용하여 사건의 흐름을 유연하게 한 스튜어트 몬로의 연출은 신선했지만 특별한 매력은 느낄수 없었다. 지휘자 리처드 길(Richard Gill)은 작곡가 헨더슨과의 오랜 우정을 바탕으로 헨더슨이 의도한 바를 적절히 잘 이끌어 냈다.

딩고는 개와 늑대의 두 가지 성격을 모두 지닌 이중적 동물이다. 보호 대상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헨더슨의 오페라 '린디'는 우리 모두의 내면속에 존재하는 딩고적 이중성을 드러냈다. 또한 린디라는 한 강인한 여성의 빛나는 의지에 대비되어 드러난 어두운 사회의 치부와 법의 한계를 생생히 노출시켰다. 멜리스마틱한 서정이 이끌어내는 음악적 쾌감은 참으로 신선했지만 오페라가 제시한 호주 사회의 암울한 면모와 사회적 과제는 공연장을 나서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이제 딩고에게 희생당한 아자리아는 린디를 향한 사회의 적대감이 아닌 조화와 화해의 메시지로 호주 사회와 역사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호주의 야생개 딩고, 사람도 희생될 정도로 위험하다

글 이혜진(월간 '객석' 시드니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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