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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세상사 이모저모

인도의 불가촉천민 -태어나는 것 자체가 죄인 사람들

by 나비현상 2008.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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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내셔널 지오그래픽

#1.
지난 21일, 인도의 한 소년이 집단 폭행을 당한 뒤 달리는 기차 선로에 던져져 숨진 사건이 보도됐다. 살인자들이 15세 소년의 '죄'로 지목한 것은 그가 한 소녀에게 연애편지를 썼다는 사실이었다.

소년 마니쉬 쿠마르는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하위 계급인 '불가촉천민(Untouchable,不可觸賤民)'이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하는 불가촉천민이 감히 상위 계급 소녀에게 애정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

소년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상위 계급 남자들에게 붙들려 머리를 삭발당하고 벌거벗은 채로 거리를 끌려다니며 매질을 당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소년의 어머니가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했으나, 결국 소년의 몸은 기차 선로로 던져졌다. 지역 경찰은 이 사건을 목격하고도 저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살인 주동자들과 방관한 경찰관은 체포되었으나, 이들에게 엄한 벌규가 적용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에 대한 범죄는 사회적인 묵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인 프라카쉬 루이스는 "언론에 보도된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인도에서 이같은 사건은 일상적"이라고 말했다.


#2.
기르다리랄 마우리아를 폭행한 상위 카스트 계급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불렀다. 그의 죄는 단 하나, 불가촉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전생에 죄를 지어 쌓인 '업(karma)' 때문에 현생에서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마우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무두장이다. 힌두교 법에서는 동물 가죽을 다루는 자는 '깨끗하지 못하며 피해야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가죽으로 돈을 버는 그의 재산 역시 부정한 것들인 셈이다. 그의 집은 주택가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변두리 한켠에 있다. 상위 카스트 계급들이 그의 '불쾌한 냄새'를 맡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폭행의 빌미는 그런 그가 마을 사람들과 같은 우물에서 물을 떠 먹겠다고 지역 경찰과 관공서에 청원했다는 사실이었다. 불가촉천민은 가축이 먹는 더러운 물 밖에 먹을 수 없는데, 감히 '인간'이 먹는 물에 손을 뻗으려 한다는 것에 상위 계급들은 분노했다.

어느날 밤, 8명의 상위 계급 남자들이 마우리아의 집을 습격했다. 그의 농장을 파괴하고, 재산을 약탈하고, 아내와 딸을 때리고, 집에 불을 질렀다. 그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네가 속한 밑바닥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라"

#3.
1999년 42세의 달리트 여성이 집단 간강을 당하고 산채로 불태워졌다. 그녀의 남편과 두 아들 역시 불에 타 숨졌다. 이들의 죄는 아들 하나가 상위 카스트 계급의 딸과 야반도주를 했다는 것이었다. 상위 계급 집안 사람들이 직접 이 가족을 8일간 고문하고 결국 죽였으나, 경찰은 이들의 행위를 방관하고 있었다.

최근 인도 동북부 비하르주의 단바드에 사는 카라와티는 무려 35㎞를 발가벗겨진 채 걸어가야 했다. 달리트 출신 과부인 카라와티가 마을 사원에 들어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단바드에서 15㎞ 떨어진 마나이디 마을에서는 두 명의 달리트 과부가 인간의 배설물을 먹도록 강요받았다. 마을에서 수두가 창궐하자 마을사람들이 이들을 '마녀'로 매도해 벌을 내린 것이다.



달리트는 길에 침을 뱉을 수 없기 때문에 목에 침 뱉는 오지통을 달고 다녀야 하고,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항상 작은 빗자루를 갖고 다녀야 한다.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 없고, 힌두교 사원에 들어가 기도도 할 수 없다.


달리트와 신체 접촉을 해서는 안된다는 관습을 지키기 위해, 물병을 건내주지 않고 손바닥에 물을 받아 마시게 하는 모습. 

인도에서 힌두교도로 태어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카스트 계급 제도에 속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 계급 제도인 카스트는 '모든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인식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신의 입에서 브라만(승려,교육자), 팔에서 크샤트리아(통치자, 군인), 허벅지에서 바이샤(상인,거래인), 발에서 수드라(노동자)가 나왔다고 하지요.

이에 속하지 않는 다섯번째 계층은 아츠유타(achuta), 또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라 불립니다. 인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는 '제5계급' 불가촉천민은 대부분 오물수거·동물가죽가공·시체처리·도살 등의 일에만 종사할 수 있어 절대적 빈곤 속에서 엄격한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들을 부르는 다른 명칭으로는 '억압받은 자들'이란 의미의 달리트(Dalit), 간디가 지은 명칭인 하리잔(Harijan) 등이 있습니다. 근래에는 불가촉천민보다 그들 자신이 선택한 이름인 달리트가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마치 흑인들이 차별의 상징이었던 'Negro, black'이란 명칭을 'colored'로 바꾼 것과 흡사합니다.

인도는 1950년 헌법이 선포됨과 동시에 불가촉천민 폐지를 선언했으며 1955년 법이 제정되면서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금하고 있습니다. 최하층 계급에 대한 차별은 엄밀히 말해 불법 행위이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부당한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는 1억6천만 달리트들에게 이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오염되고 천박한 존재'라는 편견은 온전하여 달리트들은 마을 외곽 변두리에서만 거주해야 하고, 사원이나 상위 계급의 집에는 들어갈 수도 없으며, 다른 계급과 같은 물을 마실 수도 없습니다. 거리를 걷다가도 멀쩡히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손에 들어야 합니다. 상위 계급 앞에서는 신발조차 신을 수 없다는 관습 때문이지요.

제도적 혜택으로 대학에 진학한 '행운의' 달리트 청년들은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이 자신과 같은 컵으로 음료수를 마시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는군요. 고학력 젊은이
들조차 불가촉천민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넘지 못할 벽을 확인한 것이지요.

인도는 최근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달리트는 여전히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뒤에 있습니다.  소득
최하위에 속하는 인도인의 90%,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층의 95%가 달리트 계층입니다.

달리트에 대한 타 계급의 폭력 역시 21세기에도 여전합니다. 2000년 한해 동안 공식적으로 집계된 달리트를 겨냥한 범
죄는 2만5455건에 달했습니다. 

매 시간마다 두 명의 달리트가 상위계급에게 모욕을 당하고, 매일 세 명의 달리트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며 두 명의 달리트가 살해당하고
두 채의 달리트 가구가 불태워진다는 놀라운 통계(National Crime Records Bureau)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더 가혹합니다. 다수의 범죄가 경찰 등 공권력의 비호 아래 은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에 의한 가혹행위 역시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난해 8월 비하르주(州)에서는 경찰관이 소녀 2명을 강물에 던져 익사시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겨우 여섯살인 찬다리 쿠마리와 열세살인 카말리 쿠마리 자매가 나무 장작을 훔쳤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지난해 여름 물난리로 1천4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이 지역에서는 모든 구호물품이 상위 카스트에 먼저 전달되는 바람에 쿠마리 자매와 같은 달리트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대홍수로 주의 절반 가량이 물에 잠겼던 당시, 구조요원들이 달리트 계급이 모여 사는 마을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아 문제가 됐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한 청년은 "며칠째 주민 200여명이 지붕 위에 올라가 구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러 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는 달리트들의 간절한 소망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기득권층의 반발입니다.

2006년 5월, 대학 입시에서 달리트 쿼터를 늘려 최하층민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발표되자 전국의 의사와 의대생들이 파업을 벌인 바 있습니다.국공립 병원의 진료가 마비돼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는데요.

여기에 IT 업계 종사자들과 은행가들, 공대와 경영대 학생들까지 시위에 동참하며 달리트들의 지위 향상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군요. 인도에서 출세의 지름길로 인식되는 인도공과대학(IIT), 인도경영대학원(IIM), 의대를 장악해온 특권층들은 자신들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한 것이지요.

변호사이자 전국달리트인권캠페인 활동가인 우마칸트는 "상위 카스트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인도 사회에선 카스트 차별이 없어졌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카스트는 인도 사회에 너무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 헌법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사람들의 삶을 제한하고 있다. 심지어 힌두교도가 아닌 기독교나 무슬림 교도들도 카스트의 영향을 받을 정도다. 인도 사회에 근대적 평등·인권의 개념이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국달리트인권협회의 빈센트 마노하란 변호사 역시 "1950년대 이후 일부 달리트들은 수천년 만에 처음으로 교육을 받았고, 극소수는 교수, 의사, 관리, IT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나, 전문직에 진출한 이들은 전체 달리트의 1%도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나는 기독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변호사가 됐고, 부인도 공무원이다. 뉴델리같은 대도시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심각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농촌의 고향 마을로 돌아가는 순간 다시 자동적으로 '불가촉천민'으로 돌아가 상위 카스트로부터 인간 이하의 차별을 받는다”고 성토했습니다. 


지난해 방한한 나렌드라 자다브 푸네 대학 총장은 달리트 출신으로 인도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인도중앙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자리에 오른 인물인데요. 그는 자신의 책 '신도 버린 사람들’(원제 Un-touchables)'에서 수천년간 신분제도와 투쟁한 달리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다브 총장의 저서 '신도 버린 사람들' 한국판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달리트 출신으로 인도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의 인생역정이었습니다.

달리트들에겐 영웅적 존재인 암베드카르는 달리트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고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이후 인도로 돌아와 대학 교수가 되었지만, 동료 교수들로부터 교수 휴게실의 물을 마시지 말라는 차별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차별 철폐 운동을 시작한 그는 1927년 달리트 1만여명을 이끌고 상위 카스트에게만 허락된 ‘금지된 저수지’로 행진해 공개적으로 물을 떠 마시며 '물 마실 권리'를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힌두사원 출입제한 금지 운동을 벌이고, 카스트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힌두법전을 불태웠습니다.

1947년 인도 독립 뒤 법무장관이 된 그는 헌법을 기초하면서 상위 카스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가촉천민’ 차별을 공식 철폐하고, 대학입학과 공직 임용시 달리트들에게 일정 쿼터를 주도록 헌법에 명시하는 쾌거를 거둡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법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달리트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자, 1956년 10월14일, 암베드카르는 약 50만명의 달리트와 함께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했습니다.

힌두교라는 굳건한 장벽 내에서는 달리트에 대한 차별 철폐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서 였다고 합니다. 이 집단개종은 움직이지 않는 힌두사회에 대한 처절한 외침이었지요.

이후 몇달 동안 300만명 이상의 달리트들이 그를 따라 불교로 개종했습니다. 지금도 매년 10월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달리트 출신들이 암베드카르를 추모하고 불교로 개종하는 의식을 치룬다고 합니다. 

암베드카르는 개종한 지 몇주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애 마지막까지도 그는 "인간은 평등하다. 누구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 때문에 평생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그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날이 언제쯤 올런지요. 현재 인도에서는 달리트 출신 정치인, 사회개혁가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으나, 아직도 뿌리깊은 사회적 편견이 완전히 사라질 날은 멀기만 합니다.


인도 헌법의 아버지이자 '불가촉천민'의 해방자, 암베드카르. 

간디가 '비폭력'을 반영 투쟁에 사용했다면, 암베드카르는 인도 안의 식민지였던 불가촉천민을 위해 사용했다. 두 사람은 불가촉천민 문제를 놓고 번번이 마찰을 일으켰는데, 간디는 불가촉천민의 정치적 독립을 영국의 분열책이라고 보아 반대한 반면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선거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인도 지식인 상당수는 인도 독립을 주도한 마하트마 간디를 카스트 제도의 '원흉'이라고 비난합니다. 단적인 사례로, 암베드카르가 불가촉천민의 해방을 위해 보다 강력한 법을 만드려 하자 곧바로 간디는 그에 반대하는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불같은 성격에 철통같은 의지의 암베드카르도 '국부'로 추앙받는 간디의 단식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그뒤로 아무도 인도의 불가촉천민 제도에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죠.

 

출처  : eg_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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