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O가 지구인에게 던지는 화두
"왜 사느냐?"는 물음을 인간에게 던지면, 얼핏보기엔 여러 가지 대답이 있어보인다. 다음의 대답은 그 한 보기인데, 이렇게 된다.
어린이의 대답 - 모르겠다.
어른의 대답 - 가족을 위해서다.
거기에 대한 반문 - "물음을 제대로 들으라. 그러니 그 가족이 왜 사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 다."
속인(俗人)의 대답 - 행복해지기 위해.
승려의 대답 -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온갖 분야의 학자의 대답 - 진보, 진화를 위해.
신지학자(神智學者)의 대답 - 물질 영역이 아닐 뿐 기본은 보통학자와 같음.
종교가의 대답 - 극락 여행을 위해 또는 현세 선행에 대해서인데, 선행을 쌓는 목적은 극락 여행을 위해서다.
채널러·체외이탈자의 대답 - 분리된 고차원의 자아와의 결합을 위해. 다만 결합 그것의 목 적에 대해서는 답이 없음. 대개는 우주의 진화다 뭐다 하면서 얼버무리고 만다. 내가 묻는 것은 그 진화의 목적 그것이다. 즉, 진화가 왜 필요한가 말이다.
창조자의 대답 - 많이 괴로워하고, 몸부림치고, 갈등하고, 모든 차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 오 래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하기 위해.
어느 것이나 모두, 여론조사·인터뷰라면 아주 훌륭한 보기가 될 만한 답변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답을 한 마디로 전멸시키는 물음이 있다.
"그럼 그런 걸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에 대한 답은 단 하나이다.
"자기 또는 세계가 쇠퇴한다. 죽는다. 멸한다. 정체하여 무의미해진다."
이밖에 답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왜 살아 있는가?"에 대해 대답하는 인간의 답이 무엇이건, 그건 복수의 다양한 답 은 아니고, 말하려는 것은 다만,
"물리적, 심리적, 영적으로 쇠퇴나 소멸이나 무의미만 피하고 싶다."
이것이다.
누구든 이론(異論)은 없는가?
당신이 어떤 반론을 펴도 상관없지만
당신이 어떤 목적의식, 의의를 자기 자신이나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워도 그럼 그 목적과 의 의를 제쳐버리면 당신은 어찌되는가?
흔히 '사는 보람'이라는 말을 듣는데,
사는 보람이 없이 살아갈 수 없다면,
그 사는 보람이란 살아가기 위한 부속품이나 자극이 된다.
그럼 그 자극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물음이 다시 되돌아온다.
"그럼 왜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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