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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사랑과진실 및

꼭 버려야 할 결혼의 허상(虛想).

by 나비현상 200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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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여자들의 주요 과제는 바로 결혼의 환상 없애기. 결혼 후 남자들은 편안한 가정, 알뜰살뜰 살림하는 아내, 풍성한 식탁을 바라지만, 여자들은 사랑의 완성, 완벽한 부부애, 둘만의 시간을 꿈꾼다.
‘여자들이여! 깨어나라!’고 외치는 작가 김낭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그와 일심동체가 될 것이라는 야무진 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누가, 왜 한 말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이 말을 진리처럼 떠받들고 살아왔다. 정말 그럴까? 결혼해서 부부가 되면 정말 그와 일심동체가 되는 것일까? 나는‘내가 한 사람의 아내다’라고 생각하기까지 딱 1년이 걸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거나 상황이 안 좋았다기보다는, 그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무엇보다 결혼을 하고 나니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더 고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 외에도 수많은 관계가 새로 생겨났기 때문에 그것만 감당하기에도 벅찼던 것이다.

그렇게 상대의 생활과 집안에 익숙해지는 동안 시간이 흐르고 서서히 부부로서의 관계가 정립된다. 마음 같아선 결혼식 끝나고“신랑, 신부! 행진!”신호가 떨어지면 바로 부부로서의 일심동체가 시작될 것 같지만, 꿈에 그리던‘로맨틱한 일심동체’는 좀체 경험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초기에는 그저두 사람이 마찰 없이 무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차차 살면서 일체감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외로움 따윈 이젠‘굿바이’라는 믿음
결혼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결혼한 이유도 가지가지다. 그중에는 싱글 생활이 너무 지겹고 외로워서 결혼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이란 게 싹 가셔 주는 건 아니어서 종종 갈등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마음속에 달랠 수 없는 외로움이 그득해 영원한 동반자를 얻고 싶어 결혼했다면 십중팔구‘뭐야, 이건? 혼자 살 때보다 더 외롭잖아!’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나도 한때 그랬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남편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종종 외로움이 밀려든다.
 
온갖 일 생각에 머리는 아프고 장시간 회의와 야근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쳤는데, 등 한번 안 두드려 주고 저 혼자 마신 술기운에 이내 잠들어 버린다. 저 하나 믿고 시집 왔는데, 내가 결혼 생활에 잘 적응하는지, 밖에서 힘든 일은 없었는지 걱정 한마디 없이 잘도 잔다. 이건 말 그대로‘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상황이다.
 
남편도 자기 일 때문에 바쁘고 힘들겠지 싶다가도 울컥 외로움에 가슴 저미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바로 이럴 때 여자들은‘내가 결혼 잘못했나?’,‘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결혼 전에 상상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저녁마다 사랑을 속삭이며 알콩달콩 살려고 했는데, 집안일 늘어난 것 외에는 혼자 살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만 같다.‘ 이러려면 왜 굳이 같이 살아야 하지? 차라리 연애할 때가 훨씬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아’하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여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결혼의 현실’이라는 걸 하나 둘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서운해하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또 알고 보면 그도 내면 깊은 곳의 고독은 꺼내 놓지 못한 채 혼자 외로워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라서 더 말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테고, 맞벌이를 하더라도 생활에 대해 남자가 느끼는 부담 감은 여자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인생의 짐이 크면 외로움도 큰 법. 내가 외로운데도 그냥 방치해 둔다고 탓할 게 아니라, 그는 어디가 얼마나 아
픈지 눈을 감고 쓰다듬어 봐야 한다. 그가 내 외로움을 몽땅 걷어 내고 그 자리에 반짝반짝한 사랑만 그득 채워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그 기대를 접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저만치 멀어 진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은 스스로찾아야지, 타인에게 의존해서는 절대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차피 혼자 가는 인생, 따로 또 같이 간다고 처음부터 맘 단단히 먹으면 한결 수월하다.

밤마다 핑크빛 무드가 피어날 것이라는 설렘
 
어릴 때부터 우린 첫날밤에 관심이 참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신혼여행 다녀온 선생님한테 첫날밤 얘기를 해 달라고 조르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샤워를 했는데……”까지만 나와도 벌써 자지러지며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어쨌거나 나이가 들어서도 결혼을 하면 뭔지 모를 핑크빛 무드가 퐁퐁 샘솟아 오를 것 같은 설렘을 떨치지 못한다. 상상 속에선 이미 달콤한 배경 음악이 깔리고 조명이 낮아지고 있다. 결혼은 곧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유롭게 잠자리에 들어도 좋다는 면허증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 깨시라! 신혼의 핑크빛 무드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특히나 맞벌이 부부라면 저녁에 함께 밥 먹기도 힘들다. 요즘은 신혼 첫날밤이 진짜 첫날밤인 사람도 드물 뿐더러 신혼의 달콤한 무드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끝나고 만다.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현실은 성큼 다가온다.
 
양가에 인사 다녀야지, 집들이 해야지, 밀린 짐 정리에 하루하루가 피로의 연속이다.그나마 한 사람이 집에 있다거나 야근 없이 꼬박꼬박 시간 맞춰서 퇴근하는 직장에 다닌다면 기회는 좀 더 많아진다. 그러나 요즘 야근 없는 직장이 어디 있으며, 신혼이라고 봐 주는 직장은 또 어디 있는가.

신혼집이든 아니든 집은 밖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가장 크다. 여전히 아내가 예쁘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온갖 스트레스와 피로에 지친 남편들에게 집이란 그저 편히 쉬고 싶은 공간일 뿐이다. 어떤 남자들은“아내가 남동생으로 보인다”느니“가족끼리‘그런 짓’하면 못 쓴다”느니 하는 얘기를 농담 삼아 하곤 한다.
 
정말로 많은 집에서 결혼과 동시에 아내는 여자에서 가족으로 돌변하고 만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서로 죽고 못 살았는데, 결혼식 올리고 신혼여행지에 도착하니 떡하니 가족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우리처럼 일에 쫓겨 잠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침대는 건강을 지켜 주는‘과학’일 뿐이고, 잠잘 때는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손끝도 안 건드리는 게 예의다.
 
한 제약회사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섹스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한국 남자가 91%, 여자는 85%로 나타났다. 브라질, 프랑스, 터키 사람들의 비율이 92~98%로 가장 높긴 했지만 근소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현재 성생활에 매우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그렇다’ 고 대답한 한국 남자는 9%, 여자는 7%에 불과했다. 이는 조사 대상국 중 최저 수준으로 멕시코, 브라질, 스페인 사람들의 53~78%가‘매우 만족한다’ 고 답한 것에 비하면 황당할 만큼 낮은 수치다.
 
성생활이 인생에 미치는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아내가 바라는 눈치니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아내와 하는 섹스에 대해‘의무방어전’이라는 서운하기 짝이 없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게다가 핑크빛 무드라는 것도 결혼 전에는 어쩌다 경험하는 이벤트였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일상적인 일이 되니까 그리 흥미롭지도 않고, 전처럼 열중하게 되지도 않는다.
 
신혼의 여자들 상당수가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하는데, 도무지 잠자리를 할 여건이나 시간이 안 되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너무 소홀한 거 아니냐고 채근해 대면 남자들은 정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다. 이 문제는 잠자리 하나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생활 패턴속에서 생각해야 한다.

둘만의 오붓한 주말여행과 데이트 계획
직장인들에게 주말은 정말이지 황금 같은 휴식의 시간이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이면 모처럼 술도 한잔하고, 일요일이면 늘어지게 11시, 12시까지 늦잠을 자고 허리가 아프도록 뒹굴며 일주일의 피로를 풀고 싶은데, 조금만 늦어도 시부모는“바쁘냐?”,“ 어디 가냐?”하며 전화를 걸어온다.
 
아, 정말 꼭 가야 할 결혼식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루 종일 시댁에서 보낼 생각을 하니 미칠 것만 같다.
우리 부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간에 얼마간 둘이서만 따로 나와서 산 적이 있는데, 그때는 주말마다 시댁에 가는 것이 일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고기 구워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여자들도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또 시어머니가 음식을 다 준비해 놓으시면 한 끼 편하게 먹고 반찬까지 얻어 오니 그것도 좋다. 그러나 이렇게 주말마다 시댁에 드나들다 보면 둘만의 시간은 꿈도 못 꾸게 된다.
 
결혼만 하면 저녁마다 드라이브에, 주말마다 여행에,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가득할 것 같던 꿈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주말이란 게 딱히 집에서 쉬지는 않더라도 오랜만에 친구도 좀 만나고, 둘이서 바깥바람이라도 좀 쐬려 하면 고모네 아들 결혼식에, 작은아버님 환갑잔치에, 시누이 아들 졸업식까지 불려 가는 등 시댁 경조사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결혼했으니 당연한 일이라는 건 알지만 은근히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아뇨, 별다른 일은 없고요. 그냥 오빠랑 바람이나 좀 쐴까 했지요”하면 반응은 둘 중 하나다.“ 그래라”하고 싸늘하게 전화를 끊거나“날도 추운데 어딜 가니? 주말이니 와서 좀 쉬어. 모처럼 엄마가 해 주는 밥도 먹고”하신다.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두 가지 반응 모두 며느리에게는 불편하다.
 
와서 쉬라니, 며느리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은 악마의 초대인 셈이다. 이런 문제는 처음부터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시어머니 기분 맞춘답시고 주말마다 시댁에 가는 것을 정례화해 놓으면 두고두고 피곤해진다. 신혼 초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면 충분하다.
 
두 사람도 쉬어야 하고, 친정에도 가야 할 게 아닌가. 또 이래저래 집들이라고 친구들이 찾아올 일도 있고, 결혼을 전후해서 못 다한 일도 해야 한다. 시댁에서 매주 오기를 바라는 눈치라면 집들이 핑계로 한두 번 빠지면서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도 요령이다.
 
남편과 오붓한 주말여행을 계획할 때도 미리미리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 좋다. 시부모가 서운해할까 봐 말 못하고 미적거리거나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 나면 일이 더 커진다. 신혼부부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주말을 시댁에 헌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혼자 계실 때는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두 달도 아니고 20~30년을 눈치 보면서 끌려 다닐 수는 없지 않겠는가. 대신에 전화를 자주 하면 서운함을 커버할 수 있다. 틈틈이 전화해서 요즘 어떤 일이 있는지, 당신 아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 드리면 자주 안 찾아가 도‘얼굴 본 지 오래됐다’는 생각을 좀 덜하게 된다.
 
또“어머니, 오빠가 새벽에야 들어와서 오늘은 집에서 쉬고 싶다네요”하는 식으로 남편 핑계를 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부모님도 처음에는 얼마간 서운해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게 되어 있다.
 
아들 며느리가 주말마다 찾아뵙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들 것이냐, 반갑고 고맙게 여기게 할 것이냐는 순전히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 그가 나만의 남자가 되리라는 기대감 ‘남편이 대문 밖을 나서면 저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니려니 해야 한다.
 
’나도 꽤 오래 전에 들은 얘긴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나 차츰 그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젠 내 머릿속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 자연스런 일상이 되고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혼에 대해 엄청난 결속력을 기대한다.
 
구속은 싫다고 말하면서도 그만의 여자가 되고 싶어 하고, 그가 나만의 남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혼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나만의 남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여전히 시어머니의 아들이고, 회사 상사의 부하 직원이고, 거
래처에서 기다리는 접대의 주역이다.
 
친구들도 변할 것이 없다. 결혼했다고 해서 친구 관계 다 끊고 저녁마다 꼬박꼬박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 또 두루 친하게 지내던 여자 동창이나 선후배들과도 그를 공유해야 한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접어 두고 남편만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상황을 즐긴다.

남편에게 아내는 오히려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관계일 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얼마간의 적응기가 지나기 전에 오히려 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어색하다는 남자들도 많다.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이따금 당연히 해야할 야근이 미안한 일로 변하고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 자장면 한 그릇도 왠지 부담스러워진다. 그래서“어, 좀 늦을 것 같은데, 미안해서 어쩌지?”
하며 싹싹 비는 투로 전화를 건다.
 
그러니 제아무리 사랑스러운 아내라도 가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멀쩡히 직장 다니고 친구들 잘 만나던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걸 다 끊고 나만의 남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집에서 애달파하는 사람만 고역이다.
 
그래도 돌아오는 것은 감사와 찬사가 아니라‘집에 있는 스토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해괴한 별칭뿐이다. 사랑이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당신의 생각을 두 번, 세 번 곱씹어 보라.
 
그건 어쩌면 집착이나 소유욕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대문을 나서면“오늘도 고생하겠네. 무사히 잘 다녀와”하며 아예 그를 잊어버리자. 그저 그가 자기 일에 몰입해 자기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자. 그것이 그를 성장시키고 두 사람의 관계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결혼하면 그도 정신 바짝 차릴 것이라는 생각
 
고등학교 동창 하나는 요즘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오빠의 친구와 결혼을 했는데, 이 오빠가 적잖은 한량기의 소유자였던 것. 빼어난 미남은 아니지만 키도 크고, 허옇고 조그만 얼굴에, 말솜씨 하나는 끝내줬다. 감당 못할 정도로 심한 바람둥이는 아니었지만 주변에는 늘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사실 이 오빠는 연애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여자아이들이 영화표 사 들고 찾아오면 함께 영화 보고, 초콜
릿 가져다주면 그냥 덤덤히 받았다가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과 나눠 먹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면“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라”하며 동생 대하듯 대응하는 스타일이었다.

내 친구도 이 오빠의 그런 모습에 반했는데, 매사 깔끔하고 꼼꼼하던 자기 오빠와는 달리 털털하면서도 훤칠한 외모에 마음이 끌려 어릴 때부터 무척 마음을 끓였다. 그러면서도 유난을 떨거나 잘난 척하지 않으니 더욱 좋다는 것이었다. 또 성격이 선선해서 무슨 일이든 시키면 조용히 잘해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으니, 한 직장을 1년 이상 다녀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좋아해 온 사람이었고, 이 시기를 놓치면 영영 그를 놓쳐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또 지금 당장은 별 볼일 없지만 자신이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니 당분간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정신 바짝 차리고 가장 노릇을 잘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친오빠가“잘 생각해라.
 
좋은 놈이긴 한데, 동생까지 맡기고 싶진 않다”고 했지만 자기 나름대로는 자신이 있다면서 신이 나서 결혼을 했다.그런데 그는 결혼식 일주일 전에 또다시 회사를 그만두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결혼 준비 때문에 마음이 분주했고, 신혼여행 갔다 와서 다시 취직하면 되겠지 싶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본인은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석 달이 넘도록 취직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슬슬 걱정이 되어 취직자리는 알아보고 있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이력서에 쓸 만한 변변한 경력도 없으니 돈 좀 모으면 카페나 하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렸다. 그사이 두 번인가 취직을 하기는 했지만 여느 때와 다를바 없이 6개월을 못 넘겼다.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의 무책임과 진득하지 못한 성격이었지만, 이 친구도 결혼하면 그가 정신바짝 차릴 것이라고 제 마음대로 속
단해 버린 잘못을 범했고, 결국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된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결혼 생활에 적응하고 부부 관계에 익숙해지면 사람은 전에 하던 버릇을 하게 된다. 행여 결혼하고 나면 정신 바짝 차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틀렸다. 그에게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
면 차차 달라지리라고 기대한다면 당장 생각을 고쳐먹어라.
 
특히 생활력이나 책임감, 어른스러움 따위의 문제라면 결혼 생활 자체를 위협할 만큼 큰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하고 싶다면 그가 언제까지나 지금 같은 모습이라도 괜찮은지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점검해 봐야 한다.
 

 

 
 
민주적이고 공평한 가사 분담에 대한 희망

맞벌이 비율은 갈수록 올라가는데 아내의 가사 전담 비율은 그 수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신기하고도 어이없는 일이다. 여자가 일을 하든 안 하든 가사는 항상 여자들 몫이란 말인가? 둘이 같이 돈을 벌어도, 아내가 남편보다 더 많이 벌어도, 심지어 남편은 집에서 놀고 아내 혼자서만 벌어도 상황은 크게달라지지 않는다.
 
남녀평등 운운하며 가사 분담의 필요성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들도 어디까지나 기분 내킬 때 도와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평’은 고사하고‘가사 분담’도 아니고‘가사 지원’정도 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에서 보면 미국 남자들은 다들 민주적으로, 가사나 육아를 적극적으로 분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침에 아이들 깨워서 등교 준비시키고, 아침을 먹이고, 학교도 데려다 준다. 그러나 이것도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그렇게 학교나 놀이방 시간에 맞춰 픽업하는 데 목숨을 거는 건 아이를 함부로 방치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사 분담 현실도 우리나라와 매한가지다. 아이들 등교 준비부터 아침 식사 준비, 귀가 후 설거지까지 대부분 여자들이 책임을 진다.
 
맞벌이 가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가사에 소극적이거나 냉담한 남편을 계몽할 수 있을까 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올 만큼, 미국도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가부장적인 면모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우리 남편도 3일만 계속해서 설거지를 시키면 한숨 소리에 그릇이 깨질 판이다.
 
3~4일 마감 시기만 지나면 한 달 내내 내가 설거지를 해 줄 텐데도, 늘 자기가 다 떠맡고 나는 어쩌다 한두 번 거드는 것처럼 착각하고 유세를 떤다. 오죽하면 내가 억울한 마음에 가사 분담 일지까지 쓰자고 했을까. 이런 남자들에게‘공평한’가사 분담이란 어차피 기대하기 힘들다.
 
차라리‘교묘한’가사 분담 쪽을 선택하는 편이 좋다. 지저분한 것을 못 견디는 사람 이라면 청소를 맡기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요리를 맡기는 식으로 상대의 특성을 고려해 내가 하지 않으면 상대라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을 교
묘하게 떠넘기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청소 안 한 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는 사람에게 청소를 맡겨 봤자“뭐, 아직 깨끗한데……”하면서 넘어가기 일쑤다. 또 같은 일을 요일별로 나누어서 한다거나 서로 교대로 하는 식으로 분담을 하면 서로 미루다 날짜만 넘기기 십상이다.
 
또 나름대로 철저하게 원칙을 세웠다 하더라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 혼자만 계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음식을 전적으로 남편에게 맡기고 있다. 남편이 워낙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먹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먹는 데별 관심이 없어 그저 주는 대로 있는 대로 먹는 스타일이라 나한테 맡겨 놓으면 일주일 내내 상추쌈만 먹을 우려가 있다는 걸 남편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종종 남편이 게으름을 부릴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안 차려 주면 안 먹으면서 기다린다.
 
설거지, 청소, 빨래 거의 다 내가 하는데 밥까지 차려야 하냐며, 밥만은 절대 차릴 수 없다고 버텨서 그 일은 자신의 일임을 깨닫게 해 준다. 자들에게 뭣 좀 시키려면‘정말 치사하고 더러워서 내가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응, 내가 할게”해 놓고 한 시간,“ 응. 이것만 끝내고”하며 또 한시간이다.
 
그래서 기다리다 지쳐 여자가 청소기라도 돌릴라치면 오히려 펄펄 뛰며 언성을 높인다.“ 내가 금방 한다는데, 왜 그래? 굳이 자기가 하면서 짜증은 또 왜 내는데?”한국 남자들의 화법은 거의 이런 식이다. 자신의 게으름은 뒤로 싹 감춰 두고 여자의 시위 자체만 갖고 짜증을 낸다.

어쩌랴, 우리 어머니들이 그 귀한 아드님들을 저 따위로 가르쳐 놓은 것을……. 아직 계몽 안 된 한국 남자들과 가사 분담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기대 수준을 낮추고 욕심을 접어야 한다. 그냥 아쉬운 대로 감사하다고 느껴질 정도에서 칭찬이나 실컷 해 주자. 그나마 칭찬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좋은열쇠이다.
완벽한 주부가 되겠다는 무리한 욕심

여자들이 겪는 신혼 피로감의 가장 큰 원인은 무리한 청소와 살림이다. 퇴근해서는 꼭 찌개를 끓여서 저녁을 차려야 하고, 방은 날마다 물걸레질을 해야하고, 주말마다 수건 삶고 이불 말리고 욕실 청소하고……. 집안을 둘러보면 여기저기 손길을 기다리는 일들이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살림을 하자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살림에 서툰 초보 주부가 이 일들을 완벽하게 해 내려고 마음먹는다면 다른 어떤 직장에서 일하는것보다고된 업무가 될 것이다.  맞벌이 주부라면 아예 집안에서는 한쪽 눈 감고 사는 편이 수월하다. 신혼살림 깔끔하고 예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야 백번 이해하지만, 너무 욕심내지 말고 눈에 거슬려도 적당히 넘어갈 것은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싱크대 싹싹 닦고 온갖 그릇 다 꺼내서 삶고 씻어서 엎어 놓으면 맑은 물 뚝뚝 떨어져서 보기에는 좋다. 그러나 집안일이란 게 해도 표 안 나고 안 하면 또 표 나는 것이라 완벽하게 하고 살자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날마다 삶고 말리다 보면 하루 종일 부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일의 횟수도 문제다. 날마다 해야 하는 걸레질은 이틀에 한 번만, 빨래도 토요일 오후에 한 번만, 욕실 청소도 힘들면 일주일 정도 걸러도 큰일 날 것 없다. 또 한꺼번에 멋지게 해치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번에는 변기만 닦고 또 시간 나면 바닥 타일 닦고 하는 식으로 짬짬이 조금씩 해 나가는 것이 피로를 줄이는 요령이다.
 
또 정히 피곤하면 설거지도 한나절쯤은 쌓아 둬도 괜찮다. 누가 와서 보고 흠잡을 것도 아니고, 설령 누가 보더라도 맞벌이 주부라 피곤한가 보다 할 테니 너무 신경 곤두세울 것 없다. 완벽한 주부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일신이 편해진다.

시댁 식구와 한 가족이 될 거라는 환상

내가 아는 후배 하나는 결혼 전부터 시어머니 될 사람을‘엄마’라고 불렀다. 내가 보기에는 참 희한한 일이었다. 자기 집에 멀쩡히 엄마가 살아 계시는데, 시어머니 될 사람에게‘엄마’소리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올까? 남이야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하건 이모라고 하건 딱히 내가 트집 잡을 일도 아니니 모른 척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두어 달 뒤에 만났더니 이번에는 시어머니 흉이 장난이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몰랐던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하나 둘 노출되면서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 후배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남편을 워낙좋아했기 때문이긴 하지만, 결혼 전부터 시댁에 대한 충성도가 너무 높았다.
 
달라는 사람도 없는데 온 마음을 다 쏟아 부어 놓고, 상대가 거기에 따라 주지 않으니 서운한 감정이 쌓인 것이다
사실 현실이란 게 어디 마음 같은가. 30여 년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어느 날 갑자기 결속력 좋은 가족이 되기란 쉽지 않다.
 
하다못해 TV 보는 방법, 물 마시는 방법 하나하나까지 집안마다 다 다른 것이 바로 가정의 문화적 차이다. 게다가 시댁 식구란 게 아무리 살갑고 친하다고 해도 어차피 내 핏줄이 아니다 보니 어렵고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도 낳고, 나이도 들고, 또 자신도 시어머니가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지긴 한다.
 
그러나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이 계시고 성장기를 함께 보낸 형제자매가 있는 우리 집과 남편 하나 믿고 덜렁 시집온 시댁이 어떻게 같겠는가. 그건 시간이 가고 정이 쌓여도 달라지지 않는 천륜이며 본능이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이라는 착각결혼하는 순간, 연애 시절의 달콤한 관계는 막을 내린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낭만은 짧고 생활은 길다. 결혼에는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르기 때문에 예전의 나른한 행복감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면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진정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팍팍한 현실이지만 그나마 사랑하는 사람과 수시로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다녀오는등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면 아쉬운 대로 현실이 안겨 주는 실망감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서적|‘결혼 뒤집어 말어?’(김낭 지음, 팝콘북스)  일러스트|안우정
 
결혼전문지 月刊 Weddi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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