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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세상사 이모저모

이외수 인터뷰(02:09)

by 나비현상 2008.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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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문학이 죽었다고 하는 놈들이 제일 싫어"

길고 지저분한 머리에 눈곱이 낀 노인이 앉아있을 줄 알았더니, 꽃분홍 카디건에 희고 깔끔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자칭 '꽃노털 옵하'가 기자를 맞았다. 꽃같이 화사한 늙은 오빠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난 7일, 작가 이외수 (62)는 열흘간 입원했던 춘천 시내의 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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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끊었더니 몸이 반항하더라고.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거지. 100일간 설사했어. 버텼지. 곰과 호랑이도 100일은 버텨야 사람 되는 거 아닌가. 결국 쓰러져서 병원에 끌려왔어. 궤양이 생겨서 장(臟)이 헐었대. 낫고 보니 몸이 리모델링된 것 같네."

평소 45㎏ 나가던 몸이 43.7㎏으로 줄어든 작가에게 "예상외로 깔끔해 보인다"고 했더니 "오늘 아침에는 세수도 했다"며 자랑했다.

"평소에는 세수 잘 안 해. 이도 며칠에 한 번 닦아. 외적인 것에 무심해서 그래. 몸이 '목욕 좀 해라' '머리 좀 감자'라고 못 견디게 할 때 하면 돼. 감고 빗는 건 사모님(부인 전영자씨를 지칭)이 해줘."

한글에 대한 확고한 사랑으로 "한글날에는 자체적으로 쉰다"고 하는 그가 최근 '거친 숨소리'를 뜻하는 인터넷 단어 '하악하악'을 제목으로 내건 에세이집을 냈다.

책 속에는 흠좀무(흠, 좀 무섭네), 조낸(매우), 캐안습(굉장히 보기에 딱하다) 등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우리말 파괴의 주범인 인터넷 언어를 적극적으로 쓴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와 독자 사이 간격이 멀면 책과의 거리도 멀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작가는 언제든지 독자와 대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

이외수가 지난해 펴낸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도 짧은 잠언과 세밀화가 어울린 에세이집이었다. 그는 작가로서 치열함을 잃어버린 것일까.

"나의 옛 독자들은 '들개'(1981)나 '꿈꾸는 식물'(1978)을 그리워해. 그렇지만 '칼'(1982) 이후에 내가 추구한 것은 구원이었어. '칼' 이전 내 소설 속 인물들은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자살해버렸지. 요즘에도 내 책을 읽고 가족이 자살 시도를 했다거나, 정신과에 입원했다며 내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메일이 날아와. 나는 이제 독자들에게 구원을 모색하는 방식을 얘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이 작가적 양심이라고 생각해."

그는 하루에 서너 시간 자고, 내키는 때를 골라 한 끼만 먹는다. 더 자면 머리 아프고, 더 먹으면 몸이 무겁다. 출판계에서는 이외수의 고정 독자를 40만 명으로 본다. "돈 많이 벌었겠다"고 하자 "일반 작가에 비하면 많이 버는 편"이라고 하더니 "작년에 세금을 4000만원 맞았다"고 엄살을 떨었다.

이외수를 '작가'보다는 '광인(狂人)'이나 '기인(奇人)'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불쾌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내겐 위안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내 글을 안 읽은 사람들이야. 제발 좀 읽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어. 내 위안은 내 독자 40만 명이지. 그들이 문학적으로 나한테 열광하지 않나. 나머지가 뭐라고 떠들던지 가볍게 털어버릴 수 있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어와 국사도 영어로 가르치도록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이씨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미국으로 이민 가시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건 정치적인 발언이 아니고 한글에 대한 발언이지. 한글에 대한 관심과 정책을 먼저 피력한 다음에 영어에 대해서 언급을 했더라면 내가 화가 덜 났을 거야. 그 정책이 잘못됐다는 데에는 생각이 변함없어. 너무 상류층 중심 아닌가. 하지만 앞으로는 한글 정책에 대해서도 발언 안 할 생각이야. 작가의 한 사람으로만 남을 거야."

글로 밥을 먹고사는 그는 '문학이 죽었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난 문학이 죽었다고 하는 놈들이 제일 싫어.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고 감투와 기득권 싸움에 몰두하니까 문학이 시들어가는 것 아닌가. 어떤 원로시인은 1년에 '새끼 시인'을 134명 배출한 적도 있어. 그게 문학인가? 바퀴벌레 알 까는 거지. 그 사람들이 문학을 죽이는 거야. 젊고 싱싱하고 투철한 작가 정신 가진 사람들 많아. 문학 안 죽었어."

앞으로 꼭 쓰고 싶은 작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모든 문장에 주어가 없는 소설을 완성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주어가 없는 작품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존재를 개체별로 보지 않고 보다 우주적인 하나로 보는 거지. 현상이 아니고 본성에 입각한 소설이야. 그 소설 내면 출판사는 망할 테니까 죽기 직전에 쓸 거야. 나 간 후에 출판사가 내든지 말든지."

수필집 '하악하악'을 펴낸 소설가 이외수. /허영한 기자 [춘천=신정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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