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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세상사 이모저모

작품이 뜨면 도둑들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by 나비현상 2007.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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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 기자의 그림 이야기명화 도난 사건
기사요약
미술품 도난사건은 역사가 길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침략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던 ‘전쟁의 시대’에 미술품은 예술적인..

인터폴의 통계에 따르면 반 고흐의 ‘붓꽃’과 ‘해바라기’가 팔린 이듬해인 1988년 1월부터 8월 사이에 벌어진 전체 미술품 도난 사건은 무려 9,000건에 달했다. 1985년 인터폴에 등록된 미술품 도난 사건이 총 6,200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그림이 도난을 당하게 되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그림과 작가에 대한 가치는 끝없이 올라가게 된다. 특히 미술품 도난 사건은

공식적으로 등록된 것 이외에 개인 소장품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규모에 달한다.

미술품 도난사건은 역사가 길다. 고대 그리스·로마시

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침략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던 ‘전쟁의 시대’에 미술품은 예술적인 가치 이외에도 한 나라를 지배하게 됐다는 의미에서 정복자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미술품, 그 중에서도 그림 도난의 목적은 주로 돈이다. 특히 마약 거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국제조직이 대부분 관여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마약 대금을 치르는데 도난당한 그림이 이용되기도 한다.

1911년 8월 21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 발칵 뒤집혔다.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지막 작품인 ‘모나리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나리자가 사라지자 루브르 박물관은 일주일간 문을 열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13년 11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던 ‘명화(名畵)의 귀환’인 셈이다.

범인은 이탈리아 화가이자 장식가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했던 빈센초 페루자. 그는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장에게 ‘고국 이탈리아에 모나리자를 되돌려 주고 싶다’는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우피치 미술관장은 페루자와 만나기로 한 날 경찰을 부른다. 프랑스와의 관계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나리자는 2년여 만에 루브르 박물관으로 되돌아오게 됐다. 후에 이 사건은 애국심의 발로에 따른 것으로 평가됐지만 엄연한 범죄로 남아있다.


그림 도난당하면 오히려 가치 올라


미술품의 도난은 예술품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던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침략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던 ‘전쟁의 시대’에 미술품은 예술적인 가치 이외에도 한 나라를 지배하게 됐다는 의미에서 정복자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일본이 지난 1905년 함경도에서 약탈해 간 북관대첩비가 우여곡절 끝에 2005년 10월 반환됐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비롯해 프랑스가 1871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조선왕조의궤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최대 규모의 미술관 도난 사건은 무엇일까. 지난 1990년 3월 18일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이다.

이날 도둑맞은 미술품은 자그마치 17점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추정한 작품 가격만 3억 달러에 이른다. 지금까지도 가드너 미술관 도난 사건(작품 가격 기준)을 능가하는 사건은 없는 상태다.

이 때 도난당한 소장품 중 가장 귀중한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얀 베르메르의 ‘세 사람의 연주회’다. 당시 이 작품의 가격은 1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베르메르의 작품이 오랫동안 경매에 나오지 않아 진짜 가격이 얼마가 될지 어림조차 잡지 못했다. 다만 추정가격 1억 달러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싼 가격이라고 평가했다.

인상파의 시조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의 얀 베르메르(1632~1675)는 평생 유화 50점을 남긴 과작(寡作)으로 유명하다. 그것도 지금은 30여점만이 남아있는데, 그 중 한 점이 없어졌으니 서양 미술사에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림이 한번 도둑을 맞게 되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그림과 작가의 가치가 끝없이 올라가게 된다.

당시 다른 인상주의 작가들에 묻혀 베르메르에 대한 가치가 덜 조명 받고 있던 터에 이 같은 도난사건이 벌어지자 베르메르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털린 작품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가드너 미술관이 최대 규모의 도난 사건 장소로 기록돼 있다면 세계에서 도둑들이 가장 많이 노렸던 작가는 누구일까. 정답은 피카소다.

도난 미술품을 접수하고 목록을 관리하는 아트로스(www.artloss.com)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 현재 도난당했던 피카소의 작품은 무려 551점에 이른다. 그 뒤를 르누아르의 작품 209점, 렘브란트의 작품 174점, 그리고 반 고흐의 작품 43점이 잇고 있다.

다작으로 유명한 화가 피카소는 사망 3년 후에 열린 유작전에서 116점이 한꺼번에 도난당해 전 세계 미술계가 경악했다.

돈을 노리고 훔쳐갔던 도둑들은 마르세이유의 범죄조직이었다. 이들은 작품을 매개로 돈을 요구했지만 벨기에 경찰과 프랑스 경찰의 협력으로 일망타진당하고 작품은 돌아왔다.


작품 뜨면 도둑 발걸음도 바빠져

미술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는 등 작품이 뜨면 도둑들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반 고흐. 1980년대부터 경매시장에서 엄청나게 작품 가격이 오르자 덩달아서 도난사건도 줄을 이었다.

1988년 5월 2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카네이션’과 세잔의 정물화 ‘병과 사과’ 등이 없어졌다. 명화 3점의 피해액은 5,200만 달러로 당시에는 사상 최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이었다.

7개월이 지난 1988년 12월 12일에는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초기 작 품인 ‘베 짜는 남자’, ‘감자를 먹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해바라기’ 등 3점이 털렸다. 피해액은 9,000만 달러로 추정됐다.

당시 열렸던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에서 반 고흐의 그림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지면서 도둑들이 작품을 호시탐탐 노린 것. 이 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그때 털린 작품들은 형사들의 활약으로 원래 자리로 무사히 돌아갔다.

‘반 고흐의 그림은 돈이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그의 작품은 한동안 그림 도둑들의 대표적인 표적이었다.

두 번의 도난사건이 있은 후 이듬해인 1990년 반 고흐의 작품은 또 다시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5월 18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닥터 가셰의 초상’이 8,250만 달러에 낙찰됐다.

경매가 열린 후 한 달이 지난 6월 중순 네덜란드 남부 데 보스의 노드 브라반트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초기 유화 3점이 털렸고, 이듬해인 1991년 4월 14일 반 고흐 미술관에서 20여점이 도난당할 위기에 처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인터폴의 통계에 따르면 반 고흐의 ‘붓꽃’과 ‘해바라기’가 팔린 이듬해인 1988년 1월부터 8월 사이에 벌어진 전체 미술품 도난 사건은 무려 9,000건에 달했다.

이는 1985년 인터폴에 등록된 미술품 도난 사건이 총 6,200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미술품 도난 사건은 공식적으로 등록된 것 이외에 부자들의 개인 소장품 도난 사건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엄청나다. 실제 부자들은 소장품의 내역이 외부에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꺼려 도둑맞아도 대부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거론한 도난 사건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최근 세계 미술계가 관심을 두고 있는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그 규모는 종잡을 수 없다.

상업성과 절도의 상관관계


이 같은 통계는 미술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대의 상업적인 행위와 미술품 절도의 깊은 상관관계를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통계 잡힌 것으로만 1년에 1만 여건에 달하는 미술품 도난 사건 중 주인을 찾아가는 사례는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팔려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명한 화가의 잘 알려진 작품의 경우 돌아올 가능성이 50%를 넘는다는 것. 뭉크의 ‘절규’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4년 2월 12일.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식 날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도난당한 지 한 달 후인 3월 30일 노르웨이 문화부로 70만 달러를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다행히 5월에 그림을 팔려고 했던 범인은 붙잡히고 그림은 무사히 돌아왔다.

하지만 뭉크 작품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8월 24일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서 뭉크의 또 다른 작품인 ‘마돈나’가 사라졌다.

도난 2년 만에 그림이 무사히 미술관으로 돌아온 이 사건은 1911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 그리고 1990년 미국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도난 사건과 함께 타임지가 올 3월 선정한 ‘세계의 범죄’ 25건 안에 들기도 했다.

너무나 유명해서 아무데나 팔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작품을 도둑들은 왜 훔치는 것일까? 범죄학자인 존 컨클러 터프스 대학 교수는 미술 작품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원인을 몇 가지로 구분했다.

우선 취미가 미술품 소장인 사람이 직접 소유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그나마 수긍이 간다. 나머지는 거의 돈과 관련돼 있다. 가령 명품을 찾는 컬렉터가 있어서, 화상이나 경매회사에 팔기 위해서, 그리고 돈이 될 것 같아서 등이다.

미술품 도난 사건의 대부분은 마약 거래에 발을 담그고 있는 대규모 국제조직이 관여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암시장에 내다팔기, 그림 세탁하기, 소유주와 보험회사와의 뒷거래, 그리고 마약 대금을 치르는 데 훔친 그림을 이용한다.

그들은 대부분 미술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경제적 가치는 꿰뚫고 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미술품을 돈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미술품을 소중하게 다루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 만일 훔친 작품이 팔릴 가능성이 없거나 덜미가 잡힐 것 같으면 주저하지 않고 없애버린다.

이처럼 그림이 돈이 되는 한 이를 훔치려는 도둑의 활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훼손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장선화 서울경제 기자 indi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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