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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세상사 이모저모

더 작게 만드는 기술 진화는 계속된다

by 나비현상 200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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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초부터 삼성 위기론이 퍼졌다. 그 진원지는 반도체 부문이었다. 한국 수출대표 품목이자, 삼성전자의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부문의 위기 신호는 반도체 가격 하락에서 기인했다. 올 초 대비 11월 현재까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D램의 가격은 80% 가량 떨어졌다. 주력 D램(512메가비트 기준)의 가격이 연초에 개당 6달러 수준이던 것이 현재는 1달러까지 하락한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는 시간이 갈수록 값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반도체 시장에선 1주일에 평균 1% 가량 가격이 떨어진다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1년(52주)에 50% 가량 떨어지는 것을 업계는 정상으로 본다. 이런 가격하락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드는 미세회로 기술을 통해 ‘이윤은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연 평균 하락률보다 30% 포인트 이상 가격이 더 떨어지다 보니 견뎌낼 기업이 없다. 그래서 미세회로 기술의 진화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반도체 값 올들어 급락
삼성 주춤하는 사이에 후발주자들 맹추격
선두기업만 살아남는 ‘살벌한 정글’
‘액침노광’ 신기술로 ‘보다 더 작게’ 경쟁

 

오동희 머니투데이 산업부 기자 hunter@moneytoday.co.kr

 

■ 반도체 공급 왜 대폭 늘었을까

 

그나마 기술력이 앞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일본 엘피다 정도가 올 3분기에 흑자를 냈다. 후발 대만 기업인 난야와 파워칩, 프로모스 등은 대규모 적자를 냈고, 미국 마이크론이나 독일의 키몬다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반도체 가격이 왜 떨어졌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급은 왜 크게 늘었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생산시설을 많이 늘린 게 첫 번째고, 같은 생산시설에서도 더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활발해진 게 두 번째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선두기업인 삼성전자가 지난 2006년 90나노미터(nm·키워드 참조) 공정에서 80나노 공정기술로 전환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1993년 D램 1위에 오른 삼성전자가 기술의 진화에서 뒤진 적이 없었는데, 이 시기에는 신공법을 적용하다가 후발주자인 하이닉스에 일부 추격을 허용했고, 이 틈을 타 후발주자인 대만 업체와 한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일본 엘피다가 발 빠르게 추격해왔다.
이들은 2004년과 2005년에 300mm 웨이퍼 가공 공장을 건설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삼성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생산량 확대에 나선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빈틈을 보인 것이 후발주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빌미가 됐다”고 말한다. 마라톤을 할 때 너무 멀리 처져 있으면 추격할 마음이 안 생기지만, 추월해야 할 1등이 눈앞에 보이면 힘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가 적용됐다는 것이다.


이미 1~2년 전부터 하이닉스는 대만의 프로모스, 유럽의 ST마이크로와 손을 잡았고, 독일 키몬다(인피니언 자회사)는 대만 난야와 합작사인 이노테라를 설립해 삼성을 추격해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또 일본 엘피다와 대만 파워칩이 힘을 모았고, 미국 인텔과 마이크론이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손을 잡고 기다리다가 대량 물량공세에 나서 시장 침체의 도화선이 됐다.


과거 삼성전자와 후발 주자간 시장점유율 차이는 10%포인트 이상 벌어졌으나, 이들이 서로 협력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면서 삼성전자와의 차이는 10% 포인트 이내로 좁혀졌다.

 

 

■ 반도체 기업의 생존전략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업체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름 200mm 웨이퍼보다 더 큰 300mm 웨이퍼 가공 공장 건설 경쟁이 불붙은 지 오래다. 따라서 한 장의 웨이퍼에서 얼마나 많은 칩을 생산하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다.


벼 한 포기에 더 많은 낱알이 붙게 만들 듯이, 지름 300mm 웨이퍼 안에서 더 많은 칩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칩을 더 작게 만드는 게 숙제다. 그 핵심이 미세회로 공정이다. 전 세계 메모리 업체들은 D램 분야에서 반도체 회로 선폭을 60나노 이하까지 줄였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선발업체와 마찬가지로 이 공정까지는 현재 따라왔다. 하지만 선발업체들이 50나노나 40나노 기술로 갈수록 후발업체들의 추격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런데 더 작게 만드는 축소기술이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반도체 칩이 작아지면서 오작동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반도체는 0과 1을 인식하고 작동하는데 이 0과 1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전자(電子)를 채우는 방에 안정적으로 전자를 가둬야 한다. 물통에 물을 담는 이치이다. 그런데 물통을 작게 만들다 보니 물통을 만드는 재질을 얇게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너무 얇아서 물이 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에서는 전자를 가두는 유전체가 너무 얇아지면서 40나노 회로 공정에 가서는 물이 새어나가듯이 전자가 새어나가는 ‘전류 누설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 회로 선폭이 20나노 이하가 되면 아예 전자가 투명인간과 같이 물병 벽을 통과해 아예 물을 담지 못하는 현상(양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한다. 현재 양산 기술로는 20나노 이하 선폭의 반도체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얘기다.


또 하나가 반도체 제조장비의 문제다. 반도체 제조과정에 사용되는 핵심장비로 사진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노광기(露光機)가 있다. 반도체 제조공정이 사진을 찍는 것과 유사한데, 이 노광기는 한 대에 수백 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다.


그런데 이 장비는 한 단계 진화할 때마다 이전 장비 가격의 약 1.5배에서 2배 가량 비싸진다. 현 단계에서 40나노용 노광기를 새로 사기 위해서는 막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더욱이 장비업체들은 40나노 공정에 필요한 노광기의 양산제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빛을 이용한 노광기술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더 작게 만드는 기술 진화는 계속된다


기술은 진화한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술이 인텔이나 삼성전자, 하이닉스, 도시바 등 선발업체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해법으로 준비되는 것이 물을 이용한 반도체 기술인 액침노광(液沈露光·키워드 참조) 기술과, 고유전율(high-k) 물질 등 새로운 재료를 이용하는 기술이다.


반도체를 미세하게 제조하려면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40나노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하는 노광기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빛의 파장을 줄이는 기술이 액침노광(immersion lithography) 기술이다. 물의 굴절률이 공기보다 높기 때문에 빛을 물속으로 통과시킴으로써 짧은 파장의 빛을 만들어 더 미세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물 속으로 손가락을 넣고 옆에서 비스듬히 보면 손가락의 길이가 실제보다 짧아 보이는 것이 물의 굴절률 때문인데, 이 같은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액침 기술은 삼성전자가 50나노 공정에서 일부 적용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40나노 낸드플래시 제조공정에 사용할 예정이다.


또 반도체를 작게 만들 때 생기는 전류누설을 방지하기 위해, 전자를 담는 그릇의 재질을 바꾸는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인텔은 이미 지난 13일 전 세계적으로 45나노 공정에 고유전율 물질을 적용한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 양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고유전율 물질이란 전자를 담는 그릇의 막이 얇지만 막의 틈이 아주 촘촘해 크기가 매우 작은 전자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둘 수 있는 물질을 말한다. 현재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실리콘과는 다른 새로운 물질을 찾는데 인텔이나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전 세계 기업이 앞다투어 나서고 있고 인텔이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삼성전자도 부도체를 이용해 전자를 가두는 CTF(Charge Trap Flash) 기술을 지난해 개발해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현 반도체 시황은 후발주자들에게는‘제품을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시장이다. 결국 선두기업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정글에서는 액침기술이나 고유전율 신물질을 적용해‘더 작게 만드는’기술을 선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 용어 설명


▶ 나노미터(nm)=1나노미터는 사람머리카락 굵기(60~95마이크로미터)의 10만분의 1두께임.


▶ 액침기술=기존 노광기에서 약간 변형된 장비로, 노광기와 웨이퍼 사이에 물을 투입하는 것. 어떤 물질의 굴절률이 높으면 빛이 이를 통과할 때 파장이 짧아지는 데서 착안해 공기(굴절률 1.0)보다 굴절률이 높은 물(1.36∼1.44)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기술을 이용할 경우 현재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는 193나노미터(nm)의 ArF(아르곤 플루오린) 광원의 파장을 134나노미터 정도로 31% 가량 줄일 수 있어 같은 노광장비를 사용하더라도 더 미세한 회로를 새길 수 있는 원리다.


▶ 고유전율 물질(高誘電率·high-k)=부도체가 가지는 전자기 특성인 유전율(상수 k로 표현)이 높은 물질을 일컫는 말로, 쉽게 말해 전하를 가둬놓는 능력이 뛰어난 물질을 말한다. k가 높을수록 반도체 배선간 전류누설의 차단능력이 뛰어나고, 게이트의 절연 특성이 좋아 미세 회로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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